유난히 더 지치는 그런 날이 있다. 별 거 아닌 일에도 울고 싶고, 남이 하는 한마디 한마디 쉽게 털어버리지 못하는 그런 날. 괜히 울컥하는 마음에 발 닫는 대로 걷다보니 어느새 한강의 어느 대교 위였다. 물빛에 비치는 노을은 일렁이고, 붉은 하늘 저 끄트머리는 벌써 짙은 남색 빛이 돌았다. "자기야. 나 나쁜 사람 만들지 마. 뭐가 그렇게 억울한 건진 모...
너와 내가 사랑에 빠지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나는 네가 떠나버릴까 다급히 붙잡았고, 너는 내가 질려버릴까 조심히 다가왔다. 적어도 나에게 너는 숨 쉴 공간이었다. 억지로라도 내가 처한 상황을 모른 체하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네가 필요했다. 나는 너와 사귄 후로 패스트푸드점을 더불어 작은 편의점 알바도 시작했다. 나보다도 어린...
안개 낀 색이 좋아, 종종 이렇게 말하던 너를 걱정했다.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너는 곧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을 지어서. 금방이라도 안개처럼 사라질 것만 같게 굴어서.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난 어떤 대꾸도 하지 못하고 매번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더랬다. 너는 그 침묵을 이해하고는 '걱정하지 마.' 가벼운 미소로 안심시켜주었지만, 모를 것이다. 네 그 미소마...
풍경이 하얗게 탁해져 오고 있었다. 보드랍던 바람은 점차 날을 세우고 강렬했던 태양마저도 날이 갈수록 그 열기가 찬 피부에 채 닿지 못했다. 너는 이맘때쯤이면 즐겨 입던 카멜색 코트를 올해도 어김없이 꺼내어 여미고 있겠지. 매일 의례처럼 들리는 너의 집 앞 자주 가던 카페, 덕분에 네게선 언제나 옅은 카라멜 향이 났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가서, 아마도 점...
"다녀왔습니다." 결국 10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불 꺼진 텅 빈 집에 울리는 건 내 목소리뿐. 돌아오는 정적에 마음 한 켠에서 무언가 안도감 비스무리한 것이 느껴졌다. 어두운 부엌을 가만 바라보다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피곤해." 지친다, 지쳐. 몸도 마음도. 벗어놓은 옷을 그냥 그렇게 널브러뜨려놓고 침대에 쓰러져 웅얼거렸다. 씻어야...
"누구세요?" "...안녕. 나는 김남준이야. 만나서 반가워." "와.. 아저씨 되게 잘생겼네요." "푸흐."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어요? 아니 있죠?" "당연히 봤겠지. 여기 의사인걸." 언젠가 너는 내게 물었다. 남준아, 사랑이란 뭐죠?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아플까요. "역시. 와, 어떻게 이때까지 몰랐지? 이렇게 잘생긴 의사를. 아저씨가 새 주치의...
"저..!" 마감 청소를 끝내고 100리터 봉투에 가득 찬 쓰레기 두 덩어리를 막 문 밖에 내다놓았을 때였다. 코 앞에서 들리는 부름에 자연스럽게 고개가 들어올려졌다. 고개를(약간 오버해서) 한참이나 위로 향하고 나서야 동그란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누구더라. 아, 어제 그... "콜라...?" "콜라요!" 푸하, 서로 반가움에 찬 웃음이 터져나왔다. 순...
대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차피 다 돈이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이 말에 부정은 하지 않는다. 4년이란 시간을 투자하고 얻는 건 겨우 대졸 취준생 타이틀일 텐데. 가만히 앉아 수업을 들으며 있느니 차라리 움직여서 지금처럼 돈을 버는 게 훨씬 낫지. 집에.. 도움도 되고. 부러운 점이 분명은 있겠지만, 나의 길은, 또 나의 선택...
우리가 서로의 의지이길,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